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淸 臺 ⽇ 記 는 조선 숙종, 영조 연간(1702~1759) 영남 출신 관직자였던 權 相 ⼀ 이 24세부터 81세까지 58년
간에걸쳐쓴일기이다.
권상일은안동권씨로자는台仲,호는淸臺이다.아버지權深은벼슬한적이없으나이조판서로추증되었고
어머니 경우 이씨는 李 達 意 의 딸이었다. 권상일은 1679년(숙종5) 경상도 상주 近 嵓⾥ (지금은 聞 慶 郡 ⼭ 北
⾯ 書 中 ⾥ )에서 태어나 1710년(숙종36) 31세에 增 廣 試 丙 科 에 합격한 후, 예조낭관, 만경현령, 사헌부 장
령,울산부사,사헌부집의,지중추부사등을거쳐耆⽼所에까지들어간조선후기영남퇴계학파의대표적인
학자관료라고할수있다.
본 청대일기 에는18세기상주의향촌현황,지방선비의서울에서의관직생활,그리고다시고향에낙향한후
의 향촌 생활 등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아울러 18세기의 당쟁과 관련한 영남 퇴계학파의입장, 그들의
성리학연구경향등도간간히적혀있다.
권상일은 18세기 영남 남인으로서는 특이하게 헌납, 집의, 이조참판, 대사헌 등 양반관료직의 요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이는 권상일이 노론 등 중앙 실세들에게 영남 남인의 대표로 인식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
다. 1734년 울산부사로 재직한 이후 권상일은 더 이상 한양에 올라가지 않고 주로 고향에서 소일하였다. 그
럼에도불구하고조정에서권상일을계속사헌부집의대사헌등중앙의요직에임명한것은바로권상일이영남 남인 중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중심인물이라는 것은 의식했기 때문이라고 보여진다. 이러한 배경으
로 청대일기 는권상일이관료로서한양과울산등지에서활동하던시기의기록을담은관료생활일기와고향
에머물러있을때의일상생활일기로크게나누어진다.
먼저권상일의관료기록중초입사이후예조정랑및울산부사로있을때의기록은매우자세할뿐만아니라
여러 가지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초입사 때의 면신례 과정을 비롯하여 예조에서 근무할 때 숙종의
병환내용을묘사한것,그리고울산부사로근무할때의지방관으로서의업무기록은주목할만하다.이외에
지방 출신의 관리들이 한양에서 거주할 때의 생활 기록은 재경동향들간의 유대활동, 경조사 참여 등등을 알
수있는중요한자료가된다.그러나일기라는자료의특성상관직생활보다는입사하기전혹은관직에서물
러나고향에머물때의일상생활기록이더리얼하고흥미로운것은어쩔수가없다.여기에는조선후기양반
의혼인생활,가족관계,인간관계등이잘드러나있다.
예를들어권상일이증광시병과에합격한후고향에돌아왔을때그를보고자몰려든일가친척과친지들이
어찌나 많았던지 뜰 안에 있던 나무 두 그루가 부러졌다고 하는 기록이 있는데, 이는 당시 사람들이 얼마나
복잡하게얽힌인간관계속에서살고있었는가를여실히보여주는것이며동시에영남지방유생으로과거에
급제한 이가 매우 적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기도 한다. 권상일의 가족관계는 매우 비극적이었다. 그는
부인을 세 번 잃었다. 1706년 28세 때 첫 번째 부인을 잃었고, 6년 후(1712) 두 번째 부인을 잃었으며, 언
제다시혼인했는지도모르지만1720년또다시세번째부인의期年을맞았다.첫째부인은임신중에병이
들어죽었는데,아마도임신중독과같은병이아니었을까생각된다.그리고둘째부인은아들을낳은지2년
후인1712년10월冷腹之病으로죽었다.당시권상일은부인의병을묘사하면서배속에塊(덩어리)가있었
다고하였는데,이역시오늘날자궁근종으로명명되는부인병의일종이아니었을까짐작된다.세번째부인
의사망원인에대해서는알수가없다.6년간일기가생략되었다가다시시작된지얼마안되는시점에서부
인의기년이라는얘기가나오기때문이다.
이처럼부인을세번잃고나서권상일은다시정식으로부인을얻À는않았던것으로보인다.세번째부인이
죽은지9개월후⼩室을얻었다는기록은있으나또정식혼인을했다는기록은이후어디에서도찾아볼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양반 남자들의 경우에도 3번 이상 정식으로 혼인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게 해준다. 즉 아무리 부계중심의 가족제도가 확고하게 자리잡은 조선후기 사회였다고 하더라고 사당에 한
남자의부인위패가3개이상들어가는것은역시민망한일로여겨졌을듯하다.이런어쩔수없는상황에서
권상일은소실을얻었던것으로보이는데,소실에대한기록이지극히짧아서본인스스로소실을얻을수밖
에없는처지가된것에대해매우불편해하고있다는사실을짐작할수있게한다.그후소실은嫡妻의어린
자식들을키우고집안살림을도맡아했을것으로짐작되나,권상일은그에관한기록에인색하다.다만소실
의아들로짐작되는「庶兒」가장성하여집안을관리하고부모를봉양하는것에대해서는간간히언급하고있
다.
권상일의 이러한 일상생활일기를 보면서 우리는 조선후기 양반가의 생활상을 구체적으로 들여다 볼 수 있
다. 즉 산후병 등 전근대 시기 여성들의 사망에는 역시 임신, 출산과 관련된 질병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것, 집안에 적처가 없다는 사실은 조선후기 양반 남성에게 매우 편안하지 않은 일이었다는 것, 그리고 양반
남성은 부인이나 자식을 잃는 불행을 겪어도 꽉 짜여진 가족관계 속에서 묵묵히 살아낼 수밖에 없었다는 것
등을알게된다.
그외에도이생활일기는재혼은부인사망후언제쯤했으며,일반적으로혼인후부인은언제친정으로부터
시댁으로오게되는지,이당시疫疾은실제얼마만한피해를주는것이었는가,또어떤때에감흥이되어시
를 짓게 되는지, 喪 을 당해서 葬 禮 까지는 얼마만큼의 시간이 소요되는지 등의 중요한 일상사를 아주 구체적으로 알 수 있게 한다. 또한 권상일은 시장에서의 물가도 듣는 대로 기록하여 당시의 물가사정도 알아 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언급한 사실들은 일기의 풍부한 내용 중 일부에 불과할 뿐이다. 연구자가 내용을 좀
더 천착하고 또 행간을 읽어 간다면 무수한 흥미로운 사실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청대일기 와 관련한 많
은생활사연구들이나오게되기를희망한다.